애은성당_박용성 신부
애은성당
박용성 신부

서구 평리동에는 쇠락하고 침체된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앞장선 성당이 있는데요.

주민들이 자존감을 갖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성당으로 만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이 각자 살아가는 삶 속에서 존귀하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마을 속에서 더욱 재미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고민하는 대한성공회 애은성당 박용성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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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애은성당이 세워진 배경에 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 1928년도에 대구에 처음으로 성공회가 생겼고, 시청 옆에 처음으로 성당이 생겼어요. 서부지역에도 산업단지가 생기고 노동자분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그분들,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서, 산업선교를 위해서 1971년 9월 15일에 지어졌던 성당이에요. 대구의 산업선교를 위해 세워졌던 첫 성당이라고 할 수 있죠.

- 그래서 그 이후에 노동자들, 특히 여성, 학교에 다니지 않았던 여성 노동자들을 위해서 상록야학을 운영했고, 졸업생만 7, 800명 정도 둘 정도로 산업선교의 메카 역할을 했어요. 또 노동자들의 아이들도 있어서 아이들을 위해 처음으로 성공회 유치원을 세워 운영하면서 아이들의 교육, 청소년들의 교육에 전념했었던 성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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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시민들을 위한 공유공간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 산업단지가 쇠락하면서 여기 일대가 우범 지역에다가 어두침침한 공간, 가난한 동네로 유명하기도하고, 사람들도 잘 돌아다니지 않는 그런 곳이었어요. 성당은 거친 아이들이 와서 사고를 치곤 하는, 그런 정도로 성당이 침체되어 있었는데 전에 계셨던 주교님이 이 성당이 옛날 성당으로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해서 담장을 허물고 환경을 바꾸기 시작했죠.

- 카페를 만들고, 정원이 예쁘게 꾸며지니까 동네 사람들이 놀이터처럼 와보셔서 쉬기도 하고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대구에서 진행하는 공모사업에 행정복지센터에서 신청을 해주셔서 상록식당과 상록책방에서 동네 마을주민들이 음식도 해 먹고, 독거노인분들 반찬, 야채를 나눠드리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요.

- 요즘은 책방에 애들이 많이 와요. 평리초등학교 아이들의 아지트예요, 여기가. 아이들의 놀이터죠. 자기들끼리 놀기도 하고,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인터넷, 게임도 하고, 그러면서 어머님들이 식당에서 밥도 해주고 간식도 갖다 주고 하는.

- 공유공간이 마을의 사랑방 역할도 하고, 아이들의 아지트이기도 하고, 어머니들한테는 모일 수 있는, 음식도 하면서 봉사활동도 하고 하는, 재미있는 공간이 된 것 같아요.

 

Q. 공간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제일 먼저 들어선 게 카페. 카페 에버그린이 첫 번째 공유공간으로, 좋은 커피들, 좋은 음료수들, 좋은 다과들을 먹을 수 있게 준비해서 마을주민들이 이용하고 있죠.

- 두 번째 공간이 바로 옆에 있는 청년 순례자의 공간이라고, 청년들이나 외부 사람들이 와서 쉬었다가 갈 수 있는 공간이 있고요. 여기는 누구라도 와서 먹고, 자고 할 수 있는. 지금은 캄보디아 선교사님이 와서 며칠 쉬고 계시는데 우리 교인들뿐만 아니라 외부 손님들, 선교사님들, 얼마 전에는 미얀마에서 유학 온 친구들이 와서 공부도 하곤 했어요.

식당은 이야기했던 대로 마을 어머니들이 음식을 해 먹고, 독거노인분들 반찬 나눠드리는 일도 하고, 파티도 하고, 아이들에게 간식도 만들어주는 공간. 책방은 아이들도, 어른들도 책 보고, 모임도 하고 하는 공간.

- 사제관도 마찬가지로 사제가 쓰는 공간이기는 한데, 저기도 오픈이 돼 있어요. 사람들이 와서 쉴 수 있는 방도 있고. 술도 한잔하고 담소도 나눌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얼마 전에 2층에 새로운 공유공간으로 정민철 목사님이 하시는 위드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들어서서 마을을 위한, 건강한 마을 프로그램을 진행해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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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공간에는 주로 어떤 분들이 오시고 어떤 활동을 하나요?

- 일단은 성당이니까 성당에 있는 교우들이 와서 같이 봉사활동도 하고, 음식도 해 먹고,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드리는 곳이에요.

- 마을 아이들한테는 아지트 같은 공간, 어머니들한테는 사랑방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동네 어머니들이 모여서 수다도 떨고, 해야 할 일들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봉사활동도 하고, 아이들을 챙겨주기도 하는 그런 활동들. 청년들한테는 위드가 들어오고 나서는 마을주민들, 할머니들에게 의사들과 같이 가서 건강상담도 하고, 약 처방도 하고, 방문 진료를 하는 역할들. 이런 역할을 하기도 해서 할머니들, 봉사하시는 분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 카페에 갤러리가 있고, 뒤편에도 애은 창작 스튜디오라고 갤러리가 있어서 많은 예술가가 와서 전시해요. 권기주 작가, 서울에 있는 많은 작가, 아트미션계의 내로라하는 작가가 전시하기도 하고, 마을주민들과 작가와의 만남 같은 모임도 하기도하고.

 

Q. 공간 공유를 하시면서 가장 많이 느끼시는 보람, 가치가 있다면요?

- 교회나 성당이 해야 할 일이 개인의 삶을 구원하는 것, 개인의 기복이 아니거든요.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섬기고 잘못된 것을 온전하게 회복시켜 내는 것, 그게 성당이나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이에요.

- 그래서 저는 그런 활동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게 가장 가난한 마을, 가장 열악한 지역이라고 하는 평리동, 비산동 마을주민들하고 성당이 어울려지는 공간이라는 거예요. 교회의 역할을 조금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럴 때 뿌듯하죠. 아이들이나 혼자 사시는 할머니들이 이 공간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고,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을 가질 때, 그럴 때는 ‘애쓰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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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외에 시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 가장 큰 것은 봉사활동. 신팔달시장 상인들이 야채를 주시거든요. 그걸 가지고 평리동에 혼자 사시는 독거노인분들 나누어드리는 봉사활동도 하고, 제일종합사회복지관과 같이 마을주민들과 같이할 수 있는 음식 만들기도 해요.

- 카페 갤러리에서 작가와의 만남도 가질 수 있고, 펜드로잉이라고 조영욱 선생님하고 같이 하는 펜 그림 그리기도 하고. 최근에는 위드 병원에서 아이들 대상으로 여섯 명 정도 청년 유학생들과 영어를 초, 중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어요.

 

Q. 공간공유를 통해 앞으로 어떤 것을 기대하는지와 공유의 가치에 관해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은 사람들의 관계 자체를 회복시켜 내는 것. 그러니까 사람들이 ‘온전하다’라고 하는 것을 회복시켜 내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에요. 살다 보면 부자들, 가난한 사람들 차이가 생기는데,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 마음이 힘든 사람, 그 안에서 사람이 온전했던 모습을 회복시켜 내는 역할이죠. 공동체에 생명의 관계를 회복시켜 내는 게 성직자의 역할이고.

- 이 마을에서 해야 하는 건 가장 가난한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자존감을 갖고 삶을 풍요롭게 살게 하는 것이에요. 그것에 성당이 작은 역할이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사는 것만으로 존재감,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힘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게 저한테는 성직자로서 성당이 마을주민들에게 있어 바라는 바이고요.

- 여기 사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공간과 시간 속에서, 사는 이 시간, 공간이 존귀하게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동네가 재개발되고 있어요. 재개발이라는 것 때문에 가장 크게는 독거노인, 혼자 사시는 분들, 가난한 사람들이 밀려나죠.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면 여기에 있는 사람보다 돈 있는 사람들이 들어올 거고, 원주민들은 떠나가게 되잖아요. 마을이 깨지는 게 몇십 년 동안, 평생을 동네에 살면서 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그런 것들이 깨진다는 거죠. 그건 삶이 깨진다는 거거든요. 삶 자체가 온전하게 보전이 되는 것, 존귀하게 대접받아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저희가 50주년이 되면서 교우들이나 외부 사람들에게 선언했던 것처럼 50년, 100년 후에도 이곳에 남아서 가난한 사람들과 이웃들과 자존감을, 삶을 재미있게 살아가게 하는 게 저희의 역할이었으면 좋겠어요.

- 재미있는 것을 많이 하려 해요. 청년들도 동네에 많이 모여들려 하고 있는데 이 동네가 살아 있는,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생겨서 사람들이 재미있는 시간을 가지는 게 바람입니다.